KBS교향악단X정명훈의 Choral 1 베르디 레퀴엠
3월7일(목) 저녁 8시 롯데콘서트홀
“종교음악, 교향악단의 주요 연주 레퍼토리로 확실히 정착돼야할 필요”
종교음악도 교향악단의 주요 연주 레퍼토리로 확실히 정착돼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성과 안식을 주는 종교음악 연주들이 기존의 교향악 연주들에만 익숙해있던 관객들의 귀에 새로운 영적 정화(淨化)와 안식(安息)을 가져다주는 체험을 안겨주는 장르로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3월초 종교음악 무대를 장식한 KBS교향악단X정명훈 Choral 1 베르디 레퀴엠 연주나 종교음악에서 최근 성가를 떨치고 있는 부천시립합창단 김선아지휘의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바흐 요한수난곡’을 잇따라 접하고서 갖는 생각이다.
사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연초에는 필하모닉스, 필하모닉스 앙상블, 베를린 목관오중주단, 노부스 콰르텟등 콰르텟 연주단체들의 실내악 공연들이 예년의 왈츠와 폴카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들을 다수 대체(代滯)하며 최근 공연장에서 부쩍 앙상블연주의 실내악을 넘치게 한 측면들이 적지않아 보인다. 이런 와중에 3월초 지난 3월6일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바흐 요한수난곡’이나 KBS교향악단이 종교합창곡을 마스터즈 시리즈 테마로 삼아 정명훈과 베르디 레퀴엠, 작품48을 무대에 선보인 것은 종교음악 연주도 국내 교향악단의 주요 연주 레퍼토리로 연중 정착돼도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계속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는 지난 7일 KBS교향악단의 베르디 레퀴엠 연주의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관객의 열기나 공연이 끝나자 로비로 쏟아져나오는 청중들의 인파 속에서 종교음악에 대한 열기 또한 만만치 않았음를 엿보면서 내린 생각들이다.
“‘디에스 이레(Dies irae)' 부분, 그 강렬함과 역동성 새롭게 밀려와”
사실 KBS교향악단의 베르디 레퀴엠은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챔버급 연주에 비해 대규모 오케스트레이션을 활용하고 그 유명한 'Dies irae(진노의 날)‘ 선율이 연주내내 지배하는 탓에 오랜만에 종교음악의 진수를 맛보는 느낌이었다.
베르디 레퀴엠의 음악적 특징은 솔로 보컬 4명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와 혼합 합창, 그리고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라는데 있는데 오페라틱한 스타일적 관점에서 베르디 레퀴엠은 그의 오페라 작품들처럼 매우 드라마틱하고 감정적 요소가 강해 특히 ‘디에스 이레(Dies irae)' 부분은 올해 클래식 무대에서 종교음악을 사실상 첫 무대로 접한 까닭에 그 강렬함과 역동성이 새롭게 밀려왔다.
KBS교향악단의 타악기 주자 에른스트 메튜는 이날 공연을 객석에서 본 소감에 대해 “모든 부분이 영적으로 아름다웠다”고 필자에게 평해주었는데 베르디의 레퀴엠이 단순한 종교적 작품을 넘어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해왔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코멘트로 내게는 들렸다.
사실상 올해 주요 국내 클래식 무대에서 종교음악의 첫 연주 신호탄이 된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바흐, 요한수난곡’ 연주(3월6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역시 마태수난곡이 오페라풍의 수법을 많이 구사해 음악적으로 화려한데 비해 요한수난곡은 신앙의 진지한 마음이 이루는 일관된 흐름을 강조하는 것을 알게해주는 연주였다고 본다.
국내 클래식 관객들은 다가오는 4월3일 수요일 저녁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마태 수난곡>을 다시 접할 수 있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여정을 긴장감있게 끌어가면서 각기 다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감정을 다양한 목소리와 악기로 섬세하게 그려낸 <마태 수난곡>은 그 극적인 완성도 덕분인지 바흐 생전보다 19세기에 부활한 후로 더 큰 찬사를 받아왔다.
더 몇 개월 기다려보자면 KBS교향악단의 클래식 고어들은 7월12일 KBS교향악단X정명훈 Choral II 연주회로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를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김승직,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연합합창단이 롯데콘서트홀에서 함께 하는 무대를 감상할 수 있을 공연스케쥴이 잡혀있다.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만년의 ‘작은 장엄미사’와 더불어 로시니의 대표적인 종교음악 작품으로서 역시 벨칸토적인 매력이 종교음악 특유의 진지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찬연한 광휘를 발하는 수작으로 알려져있어 종교음악이 국내 교향악단의 주요 연주 레퍼토리들로 확실히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각각의 솔리스트들, 감정의 변화 효과적으로 고른 활약”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베르디 레퀴엠은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로 구성된 솔로 부분이 각각 다른 캐릭터와 감정을 표현하는 데서 복음사가에 다분히 많이 의존하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바흐 요한수난곡’과 차별점을 갖는 듯 했다. 실제로 지난 3월6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요한수난곡 연주에서도 바흐가 마태수난곡과 마찬가지로 요한 수난곡에서도 복음사가 홍민섭의 레치타티보(영창)를 통해 복음에서 기술되는 예수 수난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들려주면서 합창과 아리아등을 더해 복음내용에 대한 신학해석과 신앙의 응답을 시도하는 것을 관객들은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베르디는 솔리스트들이 각각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멜로디를 구성, 이는 그의 오페라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멜로디 라인과 유사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레퀴엠에서 특히 베르디는 다양한 리듬 패턴을 사용해 각 부분의 감정적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전통적인 교회음악과 달리 베르디의 레퀴엠은 조성적으로 다양하며 때로는 극적인 조성 변화를 사용해 감정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지난 7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의 베르디 레퀴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한 연주를 보면서 VII. Libera me(저를 구원하소서)에서 합창과 함께 존재감의 성악을 보인 소프라노 박미자, Ingemisco(저는 탄식하나이다)에서 테너 김우경의 “선하신 분이시여 제가 영원한 불속에서 타오르지 않게 하소서”하는 열창, Quid sum miser(불쌍한 이)나 Recordare(기억해주소서)등에서 고른 성악의 활약을 보인 메조소프라노 방신제, Tuba mirum(오묘한 나팔소리)에서 합창과 함께 역시“안방의 무덤에서 모든 이 불러 옥좌앞에 모으도다”하는 베이스 심기환등 각각 솔리스트들의 성악이 이런 감정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니뭐니해도 KBS교향악단의 베르디 레퀴엠은 오케스트레이션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보였다고 해야겠는데 특히 강렬한 타악기 사용이 눈에 띄어 예를 들어 Dies irae 부분에서는 베이스 드럼, 탬버린, 첼로, 베이스등이 강력한 리듬과 에너지를 제공했다. 정교한 악기운용면에서 베르디는 각 악기의 색채와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어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섬세하고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평가다. 그래서 그는 현악기를 이용해 부드럽고 묵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목관과 금관 악기를 사용해 역동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낸다.
베르디의 <레퀴엠>은 지휘자 정명훈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대표 레퍼토리의 하나로 알려져왔다. 그는 전세계 수많은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이 작품에 관한 가장 기념비적인 해석을 수도 없이 남겨온 것으로 회자돼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리석처럼 찬란하게 뻗어나가는 정통 이탈리아 성악예술의 자애로운 따뜻함 위에 꿈틀거리며 포효하는 오케스트라의 수직적인 진노가 예술적 장관을 모처럼 연출했다는 데에 관객들의 의견수렴이 모아졌고 연말 베토벤교향곡 제9번 합창연주때처럼 오랜만의 종교음악 연주에 박수와 많은 커튼콜들이 한동안 이어지는 진풍경이 롯데콘서트홀에 펼쳐졌다.
글: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출처: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6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