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 2024-02-29

02.29 [매일경제] '유튜브 예능' 장착한 클래식, MZ세대 취향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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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예능' 장착한 클래식, MZ세대 취향 저격

 

KBS교향악단 '궁예 레퀴엠'

구독자 1만명 늘고 공연 매진

서울시향도 모델·배우 섭외해

단원 인터뷰·무대 뒤 보여줘

유럽·일본보다 젊은 관객 많아

톡톡 튀는 홍보 콘텐츠 제작

 

 

 

무대 위 근엄한 클래식이 무대 밖 유튜브에선 친근한 '예능 감각'을 장착하고 나섰다. 이미 어느 나라보다 젊은 관객층을 자랑하는 한국 클래식계이지만, 미래 세대를 적극 관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콘텐츠 실험에 한창이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건 '궁예 레퀴엠' 영상이다. 베르디의 곡 '레퀴엠' 중 '진노의 날'에 맞춰 2000~2002년 방영된 KBS 드라마 '태조 왕건' 속 궁예의 공포 정치 장면이 나온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공연 중에) 기침 소리를 내었어?" "저자의 머릿속에는 마구니가 가득하다" 등 방영 당시부터 각종 패러디를 낳았던 궁예의 유행어에 혼비백산하는 신하들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공개 2주 만에 조회수 67만회를 넘겼다.

 

놀랍게도 네티즌의 장난이 아니라 KBS교향악단 채널이 제작해 올린 공식 홍보 영상이다. KBS 저작권 영상을 활용해 이달 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과 지휘자 정명훈이 선보일 베르디 '레퀴엠' 공연을 소개했다. 고상한 클래식 음악, 품격 높은 교향악단, 체통 있는 공영방송 등 기존 이미지를 고작 34초짜리 영상으로 뒤집었다. 채널 구독자는 약 9000명 늘어 8만9000명이 됐고, 공연도 이미 매진됐다.

 

국내외 예술단체 대부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공연 실황을 아카이브해두거나 단원 인터뷰 콘텐츠를 올리기도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숏폼 콘텐츠를 올리는 사례는 흔치 않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오케스트라가 보수적인 관객층의 성향 탓에 선뜻 새로운 시도를 하긴 쉽지 않아서다.

 

 

 

반면 한국 시장은 해외 연주자들이 내한 때마다 감탄하는 '젊은 관객층'을 보유한 만큼 새로운 콘텐츠와 클래식을 접목하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기 좋은 환경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번 영상을 만든 KBS교향악단 공연사업팀의 서영재 PD도 매일경제와 만나 이에 공감하면서도 "더 다양한 분들이 즐길 수 있도록 친근한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MZ세대인 서 PD는 사내 유일한 유튜브 담당 직원이자 연출·작가·촬영·편집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경기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트럼펫 전공자로, KBS교향악단 객원연주 등 무대에서 활약하다 유튜브 PD로 전향했다. "더 다양한 관객이 클래식 공연장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개인 채널 '알기쉬운 클래식 사전'을 만들어 클래식 소개 영상을 올려 4년간 구독자 18만여 명을 모으기도 했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영상 콘텐츠 수요가 높아지자 2022년께 담당 직원 채용 공고가 떴고, 서 PD는 쟁쟁한 방송사 PD 출신을 제치고 자리를 꿰찼다. 그는 "혼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저작권의 제약이었다"며 "반면 영상·음악 자원이 풍부한 KBS에선 다양한 소스를 활용해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유튜브 콘텐츠는 클래식계 스타 단원 탄생에도 기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4월 '중요한 공연 중 팀파니가 찢어졌습니다'라는 제목의 공연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연주 도중 팀파니가 찢어진 돌발 상황을 담았는데, 당시 팀파니를 연주한 이원석 수석의 매끄러운 대처와 무대 뒤 인터뷰까지 포함하면서 조회수 450만이 넘었다. 이후 공연 땐 이 수석의 등장만으로도 유독 큰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KBS교향악단뿐 아니라 서울시립교향악단·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대형 악단들 모두 유튜브를 활발히 운영한다. 특히 자체 제작 인력을 들이면서 단체 내부의 세밀한 내용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한 관계자는 "공연 전후 무대 뒤에서 단원들은 예민해져 있기 마련인데, 갈등 없이 애정을 담아 현장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서울시향은 아예 '오늘도 시향 출근'이라는 2회짜리 자체 예능을 통해 서울시향 내 다양한 구성원을 조명했다. 모델 정혁이 일일 사원으로 출연해 손은경 대표이사와의 면담, 공연 전 악기·악보 운반, 프로그램북 판매 등 각종 일을 경험했다. 김준영 홍보마케팅팀 사원은 "재밌어야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고 생각해서 예능 형태로 만들게 됐다"며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던 이들도 클래식의 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저변을 넓히는게 목표다"고 설명했다.

 

정주원 기자

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265825?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