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의 '합창' 교향곡…따뜻한 인류애 느껴진 프로그램
수준 높은 프로그램 인상적…연주 면에서는 새로운 과제 남겨
KBS교향악단이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선보인 동시에 연주에서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KBS교향악단은 지난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제797회 정기연주회에서 대단히 야심 찬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연말이면 으레 무대에 오르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뿐만이 아니었다. KBS교향악단과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은 유럽이나 미주에서도 좀처럼 실연으로 듣기 어려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초기 합창곡 '방랑자의 폭풍의 노래'를 연주했다.
'방랑자의 폭풍의 노래'는 청년 괴테가 남긴 큰 규모의 송가다. 시인은 폭풍우를 만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그네를 위해 보호를 구하며 시상을 전개한다. 나그네가 물의 자녀요 대지의 자녀임을, 지금은 시련을 겪고 있으나 사실은 신과 같은 이임을 당당히 선포한다.
이 작품은 실러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합창'과 완전히 짝을 이룬다. 괴테와 실러라는 독일 고전주의 대표 작가를 한 프로그램 안에 포괄하고 있으며, 두 작품 모두 고통받는 이를 넉넉히 끌어안으려는 인류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시작한 독일 합창 교향악의 전통을 낭만주의 최후기의 슈트라우스를 통해 재차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뜻깊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이날 공연은 유럽과 클래식의 정신을 더 깊이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KBS교향악단과 같은 대표적인 악단이 시민 교양의 매개 역할을 감당한다면 단순히 연주력의 발전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아쉬웠던 점은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수준에 연주가 못 미쳤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모든 음악 연주의 숙명과도 같은 한계이겠으나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위대한 독일 시로 된 가사를 여전히 기계적으로 노래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서울모테트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인천시립합창단이 함께 이룬 합창대는 정확한 음높이와 균형 등 음향의 측면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문제는 독일 시의 운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강음과 약음의 교차에서 오는 역동성이 거의 드러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 결과 긴장 수준이 매우 높고 드라마틱한 슈트라우스의 '합창-교향악' 작품이 다소 밋밋하게 조형되었다.
첫 부분의 '간절한 간구'와 마지막 부분의 '순수한 인간성'의 정화가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색채로 확연한 대비를 이루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잉키넨과 KBS교향악단은 성악과 기악의 음향적 균형과 일체감을 훌륭하게 전달했다. 비록 한계가 있었더라도 작품의 풍성한 음향적 매력만큼은 충분히 느껴졌다.
2부에서는 베토벤의 '합창'이 연주됐다.
이제 우리 악단의 기술적인 숙련성은 상당히 좋아졌다. 그러나 전체의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작품의 정신을 전달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발전할 여지가 여전히 많다. 고전주의 작품일수록 기술적 차원을 넘어 정신을 전달하는 부분이 더욱 강조된다.
예를 들어 1악장은 단순한 어두움이나 고난이 아닌 교향곡 3번과 연결되는 창조적 정신의 치열함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1악장 발전부의 대위법적 모방 부분은 훨씬 더 치열하고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2악장은 교향곡 7번과 닿아 있는 리듬적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춤곡다운 경쾌함이 소나타 형식의 추동력 있는 에너지와 함께 드러나야 함에도 모티브의 첫 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공격성이 너무 강해졌다.
3악장의 경우에는 노래하는 성격(칸타빌레)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부드럽고 긴 호흡을 바탕으로 박절을 지워 버릴 만큼 자유로운 변주가 이어져야 하지만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부족했다.
그 결과 관악 파트가 나올 때마다 음악의 흐름이 단절되는 듯한 인상을 피할 수 없었다. 흐름이 단절된다는 인상을 지우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4악장에서는 1부에서도 드러난 합창단의 독일어 낭송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강음을 충분히 강하게 발음하지 못하면서 선율이 입체적으로 재현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호흡의 불균형이 발생하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템포가 서로 조금씩 어긋나는 대목도 나왔다.
합창단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은 전반적으로 음악감독 잉키넨의 장악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테너 솔로 이후 오케스트라 간주부는 관악이 조금 늦게 들어오는 실수를 하기 전까지 대단히 훌륭했다.
이러한 긴장감이 1악장에서도 나타났어야 했다. 환희의 주제와 느린 주제가 서로 엮이는 대목에서도 조금씩 어긋남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성악과 기악의 엮임이나 템포에서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성악 솔리스트로 나선 홍혜승, 김정미, 박승주, 최기돈도 더 밀도 있는 가창을 들려주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마지막 부분 네 파트의 앙상블은 인상적이었다.
KBS교향악단은 몇몇 극적인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냈지만, 그런 단발적인 효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만일 '합창'이 매년 연주할 만큼 가치 있는 작품이라면 그에 걸맞은 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기계적인 연주를 넘어서기 위해 단원 개개인들이 작품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인문적 고찰을 공유할 수 있도록 악단 차원에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404468?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