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23-07-05

[리뷰] [컬처램프] 젊은 연주자들의 패기와 열정을 지지하는 KBS교향악단의 ‘K-Classic 스포트라이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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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연주자들의 패기와 열정을 지지하는 KBS교향악단의 ‘K-Classic 스포트라이트 시리즈’

 

 

6월 30일, 7월 1일 LG아트센터서울

‘처음’이란 늘 설레게 마련이다. KBS 교향악단이 서울 강서구 끄트머리에 문을 연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처음으로 연주한다는 점, 그리고 그곳에서 KBS가 야심차게 기획한 ‘K-Classic 스포트라이트 시리즈’ 첫 공연이라는 점에서 공연을 기다리며 호기심과 기대에 부풀었다. 물론 나에게도 LG아트센터 서울은 첫 방문이었다. 일찌감치 도착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한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 공간을 찬찬히 둘러봤다.

2000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운영된 LG아트센터는 동시대를 살면서 놓쳐서는 안 될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들을 시차 없이 선보이며, 국내 컨템포러리 공연 시장을 개척해왔다. 지난 해 10월 강서구의 서울식물원 부지로 이전해 ‘LG아트센터 서울’이라는 새 이름으로 개관했다. 1335석의 다목적 홀인 LG시그니처홀과 가변형 블랙박스 U플러스 스테이지를 보유하고 있는 이곳은 ‘튜브, 게이트 아크, 스텝 아트리움’이라고 하는 3가지 건축 컨셉을 통해 예술과 과학, 자연과 시민이 교류하고 공연예술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새로운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중이다.

 

‘K-Classic 스포트라이트 시리즈’는 K-클래식을 선도하는 젊고 유망한 아티스트들을 집중 조명하기 위해 기획한 공연 프로그램이다. 이 시리즈의 시작인 첫날(6월 30일 오후 8시) 공연은 작곡가 이수연의 <점과 선으로부터>로 시작했다. 추상미술의 대가, 칸딘스키의 <점·선·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회화적인 요소들을 음악이라는 예술 안에서 새로운 어법으로 풀어낸 8분 길이의 작품이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 KBS교향악단 8대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호흡을 맞춘 요엘 레비의 지휘로 KBS 교향악단 연주자들은 관, 현, 타악기가 내는 대조적인 소리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회화적 풍경을 이끌어 냈다. 2022년 자브뤼켄 방송 교향악단 관현악 작품 공모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제14회 아.창.제 양악 부문에 당선한 작품은 꽉 짜인 구성과 모든 악기들의 특색을 적절하게 활용한 점이 탁월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객석에 앉은 나에게도 역시 소리로 이뤄진 회화를 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수연은 이화여대 음악대학 작곡과에서 학사를, 독일 바이마르 국립음대에서 작곡전공 석사를 졸업했으며 현재 독일 자브뤼켄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에 재학 중이다.

‘Passionate(열정적인)’라는 부제를 단 이날 공연이 클래식 매니어들의 관심을 모은 이유는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두 곡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연주회는 협주곡 1곡과 관현악곡 1곡으로 구성되지만 이번 기획은 연주자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매회 두 곡의 협주곡으로 구성했다. 너무나 유명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 협연)와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피아니스트 이혁 협연)를 한 음악회에서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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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박수예가 등장하고 차이콥스키 특유의 부드러운 멜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시작됐다. 박수예는 화려하고도 뜨거운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파워플하면서도 섬세함이 어우러진 연주로 소화하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격정적으로 1악장을 마무리하자 박수가 터져나온 것은 관중의 무지라기 보다는 박수예 연주의 힘이었다고 본다.

박수예는 23세의 나이에 무료 다섯장의 인터내셔널 음반을 발매한 아티스트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콩쿠르가 아닌 음반과 공연으로 본인의 음악세계를 확장해 온 만큼 무대를 장악하는 파워플한 연주가 돋보였다. 박수예는 현재 삼성문화재단 후원으로 밀라노 1753년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과다니니를 사용하고 있다.

이어 믿고보는 피아니스트 이혁이 바통을 이어받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를 연주했다.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고 피아노 앞에 앉은 이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연주에 몰입하며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낯익은 호른의 드라마틱한 연주에 피아노가 큰 스케일의 화음으로 화답하고 현악기 파트의 부드럽고도 강렬한 연주가 어우러진다. 이혁은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즐겁게 경쟁하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신의 연주를 이어나갔다. 쏟아지는 화음들을 처리하며 러시아 민요의 리듬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특유의 정서를 살리며 섬세하게 연주했다. 40여분간 혼을 불어넣은 연주를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지만 역시 환한 미소로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음악을 즐기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그의 연주 철학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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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생이니 올해 23세인 이혁은 2021년 쇼팽콩쿠르 결선에 진출했지만 우승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해 파리에서 열린 아니마토 콩쿠르 쇼팽에디션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파리 고등사범음악원(ENMP)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해 현재 마리안 리비츠키 사사로 최고연주자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국제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거머쥐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혁은 올 여름 프랑스와 폴란드의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음악페스티벌에서 무대가 예정되어 있으며 특히 프랑스의 가장 큰 국경일인 혁명기념일(7월 14일)에 파리 에펠탑 아래에서 독주무대를 선보인다.

이날 연주회는 지난 6월 20~29일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올해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 첼리스트 이영은, 테너 손지훈이 우승을 차지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 터라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됐다. 기악 부문에서 한국인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차이코프스키 콩쿨이 국제 콩쿠르 연맹에서 퇴출된 상태이긴 했지만 6개 분야 중 3개분야를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차지한 놀라운 성과에 틀림없다. 이들이 좀더 많은 연주 기회를 갖도록 한 KBS교향악단의 기획은 시의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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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ful(힘 있는)’이라는 부제의 둘째날( 7월 1일) 공연 첫 프로그램에서는 작곡가 김신의 신작 ‘아침기도(Matins)’가 초연됐다. 지난해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콩쿠르 및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연이어 1위 소식을 전하며 한국 작곡계의 위상을 보여준 김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현재 영국 왕립음악원에 재학 중이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에 잘 등장하지 않는 차임벨 외에 썰매방울 소리가 나는 슬레이벨, 영롱한 소리가 특징인 윈드차임 등을 연주에 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곡이다. “기도하는 동안 새벽의 짙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아침이 밝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싶었다”는 작곡가의 바람을 KBS교향악단은 세계 초연하는 자리에서 멋지게 이뤄준 것 같았다.

이어 첼리스트 심준호가 1710년도 카를로 루게리에서 제작된 바스카(Vaska) 악기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엘가 첼로협주곡 e단조 (Op 85)은 장중하고 짙은 어둠을 가진 첼로 독주로 시작한다. 심준호는 묵직한 첼로 음을 힘있게,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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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하게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전체에 슬픔이 배어갈 즈음 부드러운 2악장이 시작되고 3악장 아다지오에서는 명상하듯 차분하게, 소리에 빠져들 듯이 연주했다. 4악장은 다시 비극적인 정서로 돌아와 회상하듯 조용히 마무리했다. 심준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 공부를 먼저 시작했고 현악기의 소리가 너무 좋아서 바이올린을, 그러다 조금 더 중후한 음색을 가진 첼로를 열 살 때부터 전공했다. 독일의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와 노르웨이 국립음악원에서 트룰스 뫼르크와 지안왕을 사사하며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마쳤다. 서울시향 수석 첼리스트를 거쳐 현재 연주자로서 독주와 협연,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오가는 전방위 연주자로 활약 중이다.

마지막 무대는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 d단조(Op 15). 2021년 부조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4개의 특별상과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로 신세대 K클래식의 대표주자 중 한명이다.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은 청년시절의 브람스가 스승인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한 후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보살피던 시기에 작곡이 시작됐다. 원래 교향곡으로 작곡하려다 피아노 협주곡으로 선회한 만큼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오케스트라의 비중도 매우 높다. 곡은 더블베이스, 비올라, 팀파니가 분위기를 잡으면서 시작하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주제를 제시하고 나서 피아노가 조용히 등장한다. 위로하는 듯한 선율은 이내 고독에 휩싸인 듯 격정적으로 변한다.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2악장에 이어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활력넘치는 3악장까지 몰아치듯 연주하는 박재홍의 패기와 열정이 공간을 가득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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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K-Classic 스포트라이트 시리즈’ 연주회가 열린 LG아트센터 서울은 서초동 예술의전당과 잠실 롯데콘서트홀과 함께 서부 서울의 복합 문화예술 무대로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다만 LG 시그니처홀의 음향이 오케스트라 연주에 적합한지는 의문이 들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과 협연자의 음악이 무대 공간에서 골고루 조화롭게 섞이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도 롯데콘서트홀도 처음엔 음향이 너무 혼합되거나 튀는 등 문제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되어 현재에 이른다. LG아트센터도 시간과 함께 연주이력이 쌓이면서 문제들이 해소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함혜리 대표기자

출처 : http://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