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23-02-07

[리뷰] [문화뉴스] (기고) KBS교향악단 제786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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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 제786회 정기연주회-"찬란한 빛"

 

”콘서트 프로그램 순서 정형(定形)의 파괴“

 

공연일시: 1월28일(토) 오후 5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보통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는 서곡, 피아노나 바이올린 협연곡 협연자의 연주, 이어 후반부에는 교향곡 순서로 연주되는 것이 통례처럼 돼왔다. 이는 연주회의 애피타이저처럼 서곡을 통해 연주회의 예열을 다지고 협연곡으로 전반부에서 협연자를 부각시키는 한편 후반부 연주에선 비중있는 교향곡 연주로 마무리하는 것이 거의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정석처럼 정형화 돼왔던 것.

 

그러던 것이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연주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인지 곧바로 협연자의 협연곡을 전반부에 승부수로 띄우거나 연주 프로그램 순서의 파격배치로 실력으로 관객들에게 진검승부(眞劍勝負)를 보고자 하는 이런 클래식 연주회의 프로그램 파격(波格)이 신년들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지난 1월28일 토요일 오후 1월의 끝자락에 있었던 KBS교향악단의 제786회 정기연주회-“찬란한 빛‘은 서곡연주 없이 곧바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그리그 피아노협주곡(E Grieg l 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을 전반부 승부곡으로 띄워 협연자를 부각시킨 대표적 사례. KBS교향악단이 찬조 출연한 지난 1월7일 토요일 저녁 제4회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 역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Johannes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으로 전반부 포문을 열었고 1월12-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 2024년 차기 상임 지휘자의 사실상 데뷔무대였던 무대에서도 브람스교향곡 1번 연주로 비중있는 교향곡의 프로그램 전반부 파격배치가 이뤄졌다. 1월31일 있을 한수진과 함신익의 심포니송 브람스 연주도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전반부에 한수진을 띄우는 한편 브람스 교향곡 제4번의 연주로 이처럼 실력으로 관객들에게 진검승부를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파격배치가 오케스트라들의 연주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에서 연유하는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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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징한 박진감의 시작, 명징한 박진감의 마무리”

 

명징한 박진감의 시작이자 명징한 박진감의 마무리였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그리그 피아노협주곡은 피아니스트 협연자를 띄우고 부각시키는데 최적의 선곡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그의 a단조는 가장 빈번하게 들을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이긴 하지만 슈만이나 차이콥스키와 대등한 위치에서 위대한 낭만파 협주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나아가 이 협주곡은 노르웨이적인 특징으로 가득해서, 보다 무거운 중앙유럽의 낭만주의와는 달리 북유럽적인 서정성을 띠고 있고 따라서 따스하고 밝으며, 장중하면서 또한 민족적이다.

 

펜데믹이 막 발발하려던 초기 2020년 1월에 선우예권이 예전 고양아람누리에서 가진 신년음악회에도 참석한 기억이 있는데 3년전 선우예권의 신년음악회가 브람스의 6개의 피아노 소품, 작품 118이 명상적인 것이 돋보였고 다음곡 베토벤 소나타 제30번, 작품109는 자신의 말대로 희망을 바라보는 상반된 페어링(pairing)의 연주가 되었던 것을 기억해보면 올해 선우예권의 KBS교향악단과의 그리그 피아노협주곡 협연은 이런 그의 명징한 박진감의 시작과 명징한 박진감의 마무리 연주가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가는 명징한 피아노 선율의 워낙 강렬했던 연주회로 기억될 수 있을 듯 하다.

 

팀파니의 연타와 오케스트라의 총주에 이어 등장하는 Am 화음(A를 으뜸음으로 하는 단조화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의 굉장히 강렬하고 인상적인 하행화음으로 곡이 시작하는 도입부를 선우예권은 강렬히 부각시켰는데 이 부분은 워낙 강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어서 솔로몬의 선택 등 매체에서도 많이 쓰인다. 1악장의 도입부가 매우매우 유명해서 이 곡의 존재는 커녕 그리그도 모르는 일반인들도 들어봤을 터, TV에서도 여러 CF에서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였고 유명한 것으로는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등 이는 수많은 곡들에서 패러디 및 모티브를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악장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연주에서도 듣는 사람에 따라 광활한 피오르드 해안과 바닷가, 태양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자연 풍경으로 들릴 수도 있고, 고난을 극복한 승리의 찬가로 들릴 수도 있고, 속세의 자잘한 일은 잊어버리고 대범한 호연지기를 보이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매우 벅차오르는 선율의 만남은 KBS교향악단의 신년 첫 연주회를 나를 포함해 많은 참석 음악애호가들을 예전의 선우예권의 연주회와는 다른 특별함을 주었던 것 같다.

 

 

 

-“호른연주자 무대앞 배치, 현대적 말러교향곡 5번 연주의 참신한 아이디어”

 

KBS교향악단의 후반부 연주곡 말러교향곡 제5번은 사실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 Sehr langsam)로 워낙 유명한 곡이다.

 

예전 정명훈이 지휘하던 2014년 서울시향이 잘 나가던 시절 말러교향곡 제5번 연주를 들을 기회는 아름다움이 처연히 밀려오는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들려주는 연주회였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실연 연주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에토를 서울시향은 들려줬었다. 현악 파트와 하프만 연주하는 매우 아름답고 고요한 악장이 최근 들었던 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였었고 말러교향곡 5번의 초연 리허설을 지켜본 비평가 루드비히 카르바트가 “내 일생 들어본 곡중 가장 아름다운 곡이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고 한 고백이 실감났다.

 

이런 배경에 비춰보면 KBS교향악단의 말러교향곡 제5번의 연주는 시대와 지휘자가 많이 바뀌고 3악장에 호른 연주자가 무대 앞으로 배치돼 나와 연주하는 KBS교향악단측의 예상치못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변한 시대의 무대에 이토록 현대적인 말러교향곡 5번이라니 하는 느낌을 불러올만한 달라진 말러교향곡 제5번의 연주를 들려줬다는 생각이다. 일반인들의 연주회 감상식견을 엿볼 수 있는 블로그 글들에서도 이날은 4,5악장 보다 1-3악장이 좀 더 좋았고 1악장보다는 2악장, 2악장 보다는 3악장이 너무 좋아 3악장에서 무대 앞으로 특별히 예외적으로 나온 호른 연주자의 솔로가 새삼 호른의 소리가 이렇게 매력적이게 들렸나 싶었다는데 많은 음악애호가 참석자들의 동의가 모아졌다.

 

3악장에서 지휘자옆 무대 앞으로 나와 협연한 호른등의 독주를 포함해 금관파트 전체가 상당히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의견들도 엿볼 수 있었으며 너무 심각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한다기보다 참신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많은 젊은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의 현대적 해석에 음악애호가들이 향후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음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클래식계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응집력있는 연주력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예전같지 않은 KBS교향악단의 연주력의 변화다. 오랜만에 국내 무대에 선 지휘자 성시연이 KBS교향악단을 지휘한 지난 1월초 대원문화재단 KBS교향악단의 찬조출연 연주도 후반부에 선보인 슈베르트 D.956 아다지오와 라벨 볼레로 M. 81연주는 구력(球歷)이 붙은 지휘자 성시연의 면모를 뒷받침하는 KBS교향악단의 연주가 빛을 보였다고 본다. 특히 대원문화재단의 위촉으로 작곡가 박혜진이 편곡한 슈베르트 아다지오는 진혼곡 같은 슬픈 위로가 돼 최근 이태원 사태나 우크라이나 연대의 감정을 담은 특별한 연주곡이 돼 연주곡의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서울시향이 뉴욕필의 상임지휘자 얍 판 츠베덴을 영입해 그 미래가 기대되고 있고 KBS교향악단 역시 참신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많은 젊은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을 선장으로 하여 순항을 하고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오케스트라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다수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새삼 솔솔한 큰 관심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것 같다. (글: 음악칼럼니스트 여홍일)

 

출처 :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6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