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22-02-09

[리뷰] [문화대상 이 작품]새 부대에 담는 새 술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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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새 부대에 담는 새 술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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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우아하고 단호했다. 피에타리 잉키넨은 부드럽지만 명확한 지시로 나무보다 숲을 그리는 지휘를 지향했다. 연주되는 곡 중심부의 템포를 확인하는 부분에서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동작이 떠오르기도 했다.

 

KBS교향악단이 제9대 음악감독 잉키넨 시대를 열었다. 지난달 28일과 29일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에서 동일 프로그램으로 열린 피에타리 잉키넨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774회 정기연주회)를 연속 관람했다.

 

1980년생 핀란드 출신 잉키넨은 현재 도이치방송교향악단과 재팬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북유럽과 슬라브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바그너 등 독일 작품 해석에 강하다. 취임 연주회에 붙은 아이덴티티(정체성)’란 제목처럼

 

잉키넨은 조국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선택했다. 협연곡으로는 슬라브 레퍼토리인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골랐다.

 

첫 곡 시벨리우스 카렐리아 서곡’ Op.10은 핀란드 남동부 카렐리아 지방의 역사를 다룬 연극에 쓰였다. 러시아에 맞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작품을 연주하는 잉키넨의 감격은 커 보였다.

 

KBS교향악단은 긴장이 서린 채 몸이 덜 풀린 출발을 알렸다. 행진곡풍 세 번째 주제가 멀리서부터 울릴 때 비로소 새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느낌이 확연했다. 시위를 떠난 2022년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역동성이 실감났다.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협연한 차이콥스키 협주곡은 기존 해석과 궤를 달리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차력 대결이 아니었다. 조곤조곤 약음을 쓰며 청중의 귀를 자신의 연주에 수렴시키는 아브제예바의 의도는 때로 난관에 부닥쳤다.

 

불꽃 튀는 흥분감은 줄었지만 순수한 음악적인 상상의 지평은 커졌다. 앙코르로는 첫째 날 공연에선 차이콥스키 18개의 피아노 소품 Op.725명상’, 둘째 날 공연에선 쇼팽 화려한 대 왈츠’ Op.34-1을 들려줬다.

 

‘4개의 전설이란 제목으로 익숙한 2부의 레민카이넨 모음곡은 연주도 감상도 녹록지 않은 대서사시였다. 핀란드 민족신화 칼레발라의 등장인물 레민카이넨이 투오넬라 강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토막 난 채 가라앉고 마법으로 소생해 귀향한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1레민카이넨과 섬의 처녀들’, 3투오넬라의 레민카이넨’, 2투오넬라의 백조’, 4레민카이넨의 귀향의 순서로 핀란드의 대자연과 역사가 소용돌이쳤다.

 

특히 투오넬라의 백조에서 첼로 수석의 고급스런 연주는 조성호의 잉글리시호른과 어울려 유유히 떠가는 백조의 신비한 미장센을 은은하게 그려내며 청중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됐다.

 

어두운 금관이 북유럽의 바람 같이 휘몰아치다가 승리를 선언하는 힘찬 피날레를 여운처럼 남기는 핀란디아로 공연은 끝났다. 양일의 공연을 비교해보면 첫날의 긴장감이 어느 정도 해소된 29일 공연에서 여유와 자연스러움이 더 드러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지휘자가 오더라도 악단의 사운드를 단숨에 모두 바꿔버릴 수는 없다. 어떤 오케스트라든 전임 감독과 객원지휘자가 지배했던 관성을 걷어내기 힘들다.

 

이번 취임 연주회에서는 공연에 임하는 단원들의 마음가짐이 전해져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사소한 실수들이 있더라도 큰 축을 유지하면서 전진해야 하는 유기체다.

 

음악적 발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문화 메신저 역할을 하며 젊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육성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잉키넨이 늘 기억하길 바란다. 임기는 20241231일까지 3년간이다.

 

원본 출처 :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4008166632228880&mediaCodeNo=257&OutLnkCh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