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22-01-29

[리뷰] 시벨리우스의 전체와 디테일 모두 살린 잉키넨과 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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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의 전체와 디테일 모두 살린 잉키넨과 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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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지난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KBS 교향악단 신임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의 취임 연주회가 열렸다. 이날 공연에서는 시벨리우스의 관현악곡과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시벨리우스의 민속적 에너지와 치밀한 관현악법이 잘 드러난 '카렐리아' 서곡으로 시작됐다. 카렐리아 지방은 아르한겔스크에서 라도가 호수까지 뻗어 있는 러시아·핀란드 국경의 광대한 지역을 일컫는데, 이곳은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 설화와 시가의 발원지다.

 

잉키넨이 이끄는 KBS교향악단은 안정된 호흡과 뛰어난 밀도로 시벨리우스 특유의 음향을 들려줬다. 호른과 트롬본을 위시한 관악이 잘 제어됐고, 현악 파트도 저음역에서 충분한 양감을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북구의 장엄한 자연을 정중동의 음향 덩어리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음형들을 디테일하게 살려냈다.

 

이어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와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협연이 진행됐다. 아브제예바는 2010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장엄한 관현악과 현란한 피아노의 기교가 어우러지는 명작이다. 천진하고 서정적인 감성에서부터 거칠고 호방한 움직임까지, 음울한 명상적 음조에서 재기발랄한 장난과 폭주하는 초절기교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이 들려주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

 

그 폭이 넓기에 연주자에게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호흡, , 집중력이 필요하다. 또한 변화무쌍한 악상을 하나의 흐름으로 끌어갈 수 있는 강렬한 인상, 즉 카리스마도 요구된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유명한 1악장 시작 부분에서 잉키넨과 KBS교향악단, 아브제예바는 한 호흡으로 차분하게 음악을 끌어갔다. 그러나 몇 차례 미스 터치가 속주 부분에서 나왔고, 독주자의 루바토(임의로 속도에 변화를 주는 것)로 인해 호흡이 점차 헐거워지는 인상이었다.

 

연주자와 악단이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지만, 부분 부분의 이음새가 다소 매끄럽지 못했다. 또 독주자의 해석은 전반적으로 직선적이었고, 변화를 주는 부분도 다소 거칠게 표현됐다.

 

2악장은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찾았지만, 호흡이 조금 들떠 있는 듯했다. 마지막 3악장은 템포가 이따금 빨라지면서 관현악, 특히 끼어드는 목관 파트와 어울리지 못하는 대목도 있었다. 독주자와 관현악 모두 개별적으로 아주 인상적인 소리를 만들어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돈되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

 

2부에서 잉키넨과 KBS교향악단은 1부의 아쉬움을 완전히 털어내는 호연을 선보였다. 최근 시벨리우스의 관현악 작품이 국내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지만, '레민케이넨 모음곡' 네 곡을 모두 감상하는 것은 흔치 않다. 유명한 '투오넬라의 백조''레민케이넨의 귀향'만 따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잉키넨의 지휘 아래 KBS교향악단의 금관은 아주 훌륭하게 제어됐다. 시벨리우스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저음역과 고음역의 대비다. 저음역은 보통 길게 이어지는 지속음으로 채워지고, 고음역에서는 복합리듬이 펼쳐진다. 말하자면 음향이 두 개의 층을 이룬다고도 할 수 있다.

 

잉키넨의 연주는 이런 두 개의 층이 서로 움직이고 겹쳐지고 분리되면서 음악이 진행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KBS교향악단은 시종일관 집중력을 유지했다. 특히 셈여림의 고조나 후퇴가 점진적으로 길게 일어나는 대목이 많은데, 악단은 중간에 튀거나 빠지는 소리 없이 전체적인 긴장감을 잘 유지했다.

 

네 곡 전체가 모두 훌륭했지만, 1'레민케이넨과 섬의 처녀들'에서는 관현악적인 색채가 인상적이었다. 2'투오넬라의 레민케이넨'은 현악기들의 응집력이 훌륭해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강물이 충분히 잘 묘사됐다.

 

강물을 배경으로 금관의 공격적인 울림도 인상적이어서 주인공이 겪는 죽음과 비극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신비로움과 음울함이 결합한 3'투오넬라의 백조'에서는 잉글리시 호른과 첼로가 이루는 앙상블이 명상적이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드러냈다.

 

잉키넨은 마지막 곡 '레민케이넨의 귀향'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전체와 디테일을 함께 다뤘다. 세부 효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악상의 큰 흐름을 먼저 살리려는 그의 너른 시야가 돋보였고, 클라이맥스를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면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 결과물은 더없이 극적이었고 음향도 효과적이었다.

 

이날 공연의 앙코르는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였다. 성공적인 연주였다. 잉키넨은 그의 장기인 시벨리우스의 진가를 알렸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각인시켰다. 앞으로 잉키넨과 KBS교향악단의 행보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원본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220129031200005?input=119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