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17-07-07

[리뷰] 피아노를 이해하는 연주자 파질 세이, KBS교향악단 제719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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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피아노를 이해하는 연주자 파질 세이, KBS교향악단 제719회 정기연주회

 

 

[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파질 세이(Fazil Say)는 피아노를 이해하는 피아니스트다. 그는 피아노의 구조를 깊이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연주자다.

 

여린 감수성의 음악가 모차르트
파질 세이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다. 이런 경우 다수는 작곡가의 입장에서 완전히 재구성한 독특한 연주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이는 작곡가이의 입장에서 작곡가로서의 모차르트가 내놓은 원형을 찾아가는 연주를 들려줬다. 그의 연주에서 새롭게 느껴지고 독창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한편으로 모차르트의 의도를 전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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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2악장 10마디의 상승음들을 스타카토로 연주하도록 했다

 

예컨대 이날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2악장, 그중에서도 10마디를 살펴보자. 6개의 상승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이음들을 스타카토(staccato, 음표를 짧게 연주)로 연주하라고 지시해 놨다. 그런데 다수의 피아니스트는 이 부분을 완전한 스타카토보단 하프 스??토에 가깝게 연주하곤 한다.

 

평자가 비교를 위해 찾아본 브렌델(네빌 마리너/A.S.M.F., 1971 PHILIPS), 폴리니(뵘/빈필, 1976 DG), 제르킨(아바도/런던심포니 1983 DG), 호로비츠(줄리니/라스칼라, 1987 DG) 등의 연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반면 세이는 이 부분을 확연히 드러나는 스타카토로 연주하고 있다. 얼핏 들었을 때는 세이의 독창적인 조금은 튀는 연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악보를 확인한 결과 그것은 모차르트의 의도를 분명히 표현하려는 세이의 해석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세이의 이날 연주는 섬세하고 서정적이었다. 그가 이해하는 모차르트가 그런 이미지인 까닭이다. 세이의 여린 터치는 단순히 소리가 여리다는 의미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부서질 듯 투명하고 여린 감수성을 지닌 모차르트를 연주에 담으려는 세이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작곡가로서의 세이
이날 예정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마치고 두 곡의 앙코르를 들려줬다. 첫 곡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을 재즈로 편곡한 음악이다. 다음 곡은 세이가 작곡한 블랙 어스(Black Earth)다.

 

일반적으로 재즈 판타지 온 모차르트(Jazz fantasy on Mozart)로 불리는 이 곡은 흔히 터키 행진곡으로 불리며 우리 애호가들의 귀에 익숙한 도입부를 지녔다. 하지만 첫 주제가 끝나기 무섭게 리듬이 얽히고설키며 전혀 새로운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세이가 첫 앙코르로 이곡을 연주한 것이 흥미롭다.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경우 모차르트의 여린 내면을 파고드는 내향성의 연주였던 반면 재즈 판타지 온 모차르트는 재즈를 차용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정반대의 어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세이의 시각이 흥미를 더하는 선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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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질 세이는 피아노를 이해하는 피아니스트다 (사진: 파질 세이 페이스북)

 

다음으로 연주한 블랙 어스는 전적으로 세이의 창작물이다. 두텁게 쌓아올린 불협화음에선 혼란이 느껴진다. 이어 세이는 건반이 아니라 피아노의 현을 직접 손으로 뜯어 전혀 새로운 소리를 들려줬다. 건반과 헤머를 통하지 않고 맨손으로 현을 뜯어서 내는 소리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이 느껴졌다.

 

블랙 어스는 말 그대로 흑암의 지구, 다시 말해 원시 상태의 지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두텁게 쌓아올린 불협화음은 혼돈을 의미하며 맨손으로 현을 뜯어서 내는 소리는 문명 이전의 야생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현을 맨손으로 연주한 것이라고 하기에 세이의 연주엔 상당한 테크닉과 피아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세이가 선보인 테크닉은 일종의 ‘프리페어드’(Prepared) 기법이다. 피아노 현에 얇은 종이나 플라스틱 조각, 병뚜껑 등 다양한 물체를 끼워 넣어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 내는 방법인데, 세이는 자신의 손을 패드처럼 활용해 피아노가 가진 음색을 뛰어 넘어 새로운 체험을 선사했다.

 

KBS교향악단 제719회 정기연주회
일시·장소: 6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요엘 레비
협연: 파질 세이
연주: KBS교향악단

프로그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A장조 KV 488
파질 세이: 알라 투르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 론도에 대한 재즈와 환상곡 (피아노 앙코르)
파질 세이: 블랙 어스(Black Earth, 피아노 앙코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에디션: R. 하스)


권고든 withinnews@gmail.com

 

 

원문출처: http://blog.naver.com/withinnews/221040858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