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17-06-01

[리뷰] 슈베르트가 그린 위대한 세계 'KBS교향악단 제718회 정기연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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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슈베르트가 그린 위대한 세계 'KBS교향악단 제718회 정기연주회 '

 

[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악보를 음악으로 옮기기 위해선 해석이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악보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자신의 시각에서, 나름의 논리적 토대 위에 해석을 세운다.

해석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가장 확연하게 색깔이 드러나는 부분은 템포다. 몇몇 작곡가는 악보에 메트로놈 표시를 삽입해 템포를 명쾌하게 제시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연구를 통해 적절한 템포를 찾아야 한다. ‘이 부분은 이 정도 템포에서 슬픈 감정이 잘 드러난다’는 정서적인 면을 근거로 템포를 정할 수도 있다. 또는 모차르트 음악의 경우처럼 제2바이올린의 8분 음표를 기준으로 악보를 면밀히 분석해 템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템포를 정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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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레비는 슈베르트의 이상을 소리에 담았다 (사진: KBS교향악단)

    


음향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이 갖는 정서적 측면 즉, 진취적이라든지 투쟁적이라는 느낌이 잘 발휘되도록 음향을 만들 수도 있으며,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측면에서 근거를 마련할 수도 있다.

HIP한가?
‘힙스터’(Hipster)란 말에서 파생된 ‘힙하다’란 표현은 흔히 ‘트렌드에 민감한’ ‘세련된’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HIP’이 대문자로 쓰인 것에 주목하자.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의 줄임말이다. 1970년대 이후 여러 연주자들이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연주는 ‘시대연주’ 또는 ‘원전연주’라는 말로도 불린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먼저 음고가 낮다. 현대 음고의 표준은 1955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의해 정해졌다. 이에 다르면 기준 음 ‘A’(라)는 ‘440Hz’다. 하지만 바흐가 활동하던 18세기의 가준 음 ‘A’는 435~438Hz 사이로 추측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들은 당시의 음고를 반영해 연주하기 때문에 현대의 연주에 비해 낮은 소리를 낸다.

다음으로 음향도 현대의 음악과는 차이가 있다. 현악기의 경우 현대엔 금속 재질의 현을 사용하는 반면 원전연주자들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거트현을 사용한다. 음향의 규모에도 차이가 있다. 바로 ‘더블링’(Doubling)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악기의 수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말한다. 오케스트라의 경우 그 규모를 목관악기의 수로 나타낸다. 2관 편성이니 3관 편성이니 하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엔 지금과 같은 대형 연주홀이 없었다. 그래서 훨씬 작은 규모로도 작곡가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연주회의 규모가 커진 만큼 악단의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연주하는 이들은 여전히 본래의 규모를 지키려 한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현대악기 연주자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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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의 더블링된 음향은 슈베르트의 의도에 부합했다 (사진: KBS교향악단)



더블링이 적절했나?
요엘 레비와 KBS교향악단은 항상 더블링으로 연주에 임해왔다. 그렇다고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연주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연주하는 현대의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평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도르트문트대학의 음악학 교수 마르틴 게크(Martin Geck)는 자신의 책 ‘혹등고래가 오페라극장에 간다면’에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가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의 귀와 음악적 감성은 현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평자는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어떤 곡은 해석에 따라 더블링 더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더 그레이트”처럼 말이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은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훨씬 웅장한 음향을 갖췄다. 호른의 개성적이며 장대한 노래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영웅적인 측면이 베토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본래 슈베르트의 악보를 살펴보면 이 곡은 2관 편성이다. 즉, 목관악기가 두 대씩 배치되는 규모다. 따라서 관악기의 규모도 작아서 두 대의 호른이 도입부를 연주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레비는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더블링해서 확장시켰다. 그리고 도입부 역시 4대의 호른이 연주하도록 했다. 풍성한 사운드가 영우적인 풍모를 자랑하며 홀을 가득 채웠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이 더 그레이트 교향곡을 더블링으로 임했다는 점은 단순히 웅장한 음향을 들려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 의도가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최후의 작품이자 최고의 작품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룩한 소박한 작품세계를 스스로 깨고 나온 위대한 날갯짓의 결과물이다. 만약 이 곡을 2관 편성의 규모로 연주했다면 슈베르트가 이룩한 위대한 세계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제대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평자는 아마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정서적, 의미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악보를 살펴보면 더블링이 적절했다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슈베르트는 작품 여러 곳에서 같은 음형을 음정을 달리해 여러 악기가 연주하도록 한 것을 볼 수 있다. 슈만 역시 교향곡 4번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곡한 적이 있다. 1841년 교향곡 4번을 발표했을 당시 음향이 빈약하다는 평론가들의 지적에 10년이 지난 1851년 개작해 발표한 바 있다. 슈베르트가 같은 음형을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도록 한 것은 중장하고 풍성한 음향을 얻기 위해 고민한 결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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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는 여러 악기가 동일한 음형을 연주해 웅장한 음향을 만들도록 했다

 

대학의 활기 보단 진지함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브람스 대학축전서곡(Academic Festival Overture)은 ‘축전’(Festival)보단 ‘대학’(Academic)의 성격이 좀 더 드러나는 연주였다. 많은 지휘자들이 곡이 가진 밝은 측면을 드러내기 위해 다소 빠른 템포를 취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레비는 신중한 자세로 악보의 템포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조금 느린 연주라고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연주가 10분 초반의 연주시간을 기록한 반면 레비는 11분의 연주시간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음색의 그러데이션(Gradation)
그러데이션이란 그래픽에서 사용되는 기법으로 어두운데서 밝은 값으로, 큰 모양에서 작은 모양으로, 껄끄러운 결에서 매끈한 결로, 또는 한 색상에서 다른 색상으로 등과 같이 점진적이며 매끄럽게, 단계적으로 변해 가는 것을 말한다. 이번 경우에 음색의 그러데이션을 의미한다. 핀커스 주커만(Pinchas Zukerman)과 아만다 포사이스(Amanda Forsyth)는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이하 이중 협주곡)을 연주하면 점진적인 음색의 변화를 통해 작품이 가진 내러티브를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브람스가 이중 협주곡을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과의 화해를 위해 작곡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1악장 도입부는 당시로선 충격적일 정도의 불협화음으로 시작한다. 바이올린과 첼로는 각각 요아힘과 브람스를 상징하며 도입부의 불협화음은 두 사람의 불화를 나타낸다. 단순히 이러한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의 변화만으로도 두 사람의 불화에서 화해의 내러티브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주커만과 포사이스는 음색을 통해 이야기를 한 결 뚜렷하게 드러냈다.

1악장에서 두 사람의 음색은 날이 서 있었다. 신경질적인 보잉의 결과다. 마치 두 사람이 악기를 통해 언쟁을 벌이는 듯했다. 그런데 이런 날 선 음색은 2악장에 들어서 부드럽게 변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하나의 음색으로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치 요아힘과 브람스의 따뜻한 화해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3악장에 들어선 장난기마저 느껴지는 대범하고 화려한 음색을 펼쳐졌다. 아마도 이런 연주는 두 연주자가 부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요아힘과 브람스가 그랬듯 주커만과 포사이스가 부부로서 다투고 화해하고 장난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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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커만과 포사이스는 부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했다 (사진: KBS교향악단)


브람스의 내면은 오케스트라에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에서 바이올린이 요아힘을 첼로가 브람스를 나타낸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 곡에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은 무엇일까. 평자는 오케스트라는 브람스의 내면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도입부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불협화음은 두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요아힘 때문에 화가 난 브람스 자신의 속마음으로 볼 수 있다. 즉, 첼로는 브람스의 외형이며 오케스트라는 내면인 것이다. 1악장에서 바이올린과 첼로가 대림을 이루는 동안에도 오케스트라가 폭넓은 음향으로 두 솔리스트를 감싸는 것은 브람스가 화해를 소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곡에서 오케스트라가 브람스의 내면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지휘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첼로와 일정 부부 역할을 나누면서도 한편으로 화해를 바라는 모습을 내비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레비가 단순히 반주에 머무르지 않고 바이올린 첼로와 더불어 정확히 음악의 한 축을 이뤘던 것은 아마도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주커만 포사이스 부분와 함께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적극적인 연주가 어우러져 생생한 연주가 탄생한 까닭이다.

KBS교향악단 제718회 정기연주회
일시·장소: 5월 18일 롯데콘서트홀
지휘: 요엘 레비
협연: 바이올린 핀커스 주커만, 첼로 아만다 포사이스
연주: KBS교향악단

프로그램
브람스: 대학축전서곡 op. 80
브람스: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A단조 op. 102
슈베르트: 교향곡 9번 C장조 D. 944 "더 그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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