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17-04-04

[리뷰]'이 세계 너머의 소리' KBS교향악단 제716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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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에게 아름다움은 멀리 있는 것이다. 멀리 있는 것은 곧 현실에 더렵혀지지 않은 것이며, 아름다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가 쓴 소설 ‘설국’(雪國)의 별이 그런 존재다.

 

오르간은 가와바타의 별처럼 멀리 있어 아름다운 악기다. 무대 밖에 멀찍이 위치하는 점도 그렇지만 우리의 인식 속에서도 현실이 아닌 아득한 종교적 내세에 속한 악기처럼 느껴진다.

 

생상스는 별을 동경(憧憬)한 사람이었다. 그가 프랑스천문학회의 정회원이었던 건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생상스에게 오르간은 별을 향한 동경의 마음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말러가 교향곡 2번 “부활”에서, 리스트가 “파우스트 교향곡”에서 초월적 세계관을 그릴 때 오르간을 사용했단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르간은 결정적 순간에 등장해 국면을 전화시킨다 (사진: 롯데콘서트홀)

 

피부로 느껴지는 장대한 음향
생상스 교향곡 3번의 오르간은 특정 부분에서 종교적 분위기를 더하는 것과는 비교를 거부한다, 이 곡에서 오르간은 결정적 순간에 등장해 국면을 전화시키기도 하며 마치 인간사에 개입하는 신의 목소리처럼 오케스트라 연주 뒤에서 조용히 읊조리기도 한다. 그만큼 이 곡에서 오르간의 존재감은 절대적(obbligato)이다.

 

평자는 지난달 30일과 31일 양일에 걸쳐 KBS교향악단의 연주회에 참석했다. 첫째 날 연주홀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었고, 둘째 날은 롯데콘서트홀이었다. 두 홀은 음향의 특성에서도 차이를 보이지만 가장 큰 차이는 오르간의 유무에 있다. 요엘 레비는 예술의전당 무대에선 전자 오르간으로 오르간을 대신했다. 연주에는 문제없지만 이 차이는 소리의 완성도를 좌우할 만큼 중대했다.

 

생상스 교향곡 3번은 2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각각의 악장이 다시 두 부분으로 뚜렷하게 나뉘기 때문에 실제론 4악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곡 전체에서 오르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2악장 후반부는 오르간의 웅장한 울림으로 시작하는데 예술의전당 연주에서 사용한 전자오르간은 음장(音場, acoustic field) 즉, 물리적으로는 음이 존재하는 공간의 깊이와 폭이 부족했다. 따라서 오르간의 음향이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지 못하고 스피커가 위치한 무대 안쪽에만 머물러 있었다. 결국 오르간 소리에 대응하는 오케스트라의 표현도 작곡가의 의도와 차이를 보였다.

 

2악장 후반부가 시작하는 부분을 악보에서 찾아보면 f 나 p 와 같은 셈여림표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보면 오르간의 화성이 겹겹이 쌓아올려져 있다. 그리고 바로 밑에 ‘maestoso’라고 적혀있다. 웅장하게 연주하라는 의미다. 그리고 오르간이 등장하는 마디와 바로 전 마디가 겹세로줄로 구분돼 있다. 2악장의 후반부가 시작하는 부분으로서 이전과 구분지어 연주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샤를 뮌슈(Charles Munch), 장 마르티뇽(Jean Martinon) 등 거장들 역시 이 부분을 웅장하게 연주한 바 있다.

 

그런데 전자오르간이 충분한 음장을 확보하지 못하자 오케스트라 표현의 폭도 다소 줄어들어 장대한 연주에 이르지 못했다. 반면 둘째 날 롯데콘서트홀에서 신동일의 오르간 연주는 전날의 아쉬움을 모두 날려버리는 풍성한 소리를 들려줬다. 음장의 깊이와 폭 모두 만족스러웠다. 오르간 소리가 홀을 가득 채우자 현악기의 어프로치(approach) 한층 과감해졌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바이올린의 소리가 충분히 뻗어 나오기 힘든 특성을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둘째 날 KBS교향악단의 연주엔 단순히 홀의 특성으로 치부하기 장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생상스는 장중한 오르간 음향을 요구한다

 

한층 커진 진폭
오르간의 가세는 연주의 세부적인 부분에도 차이를 불러왔다. 1악장 후반부 53마디부터 살펴보자. 오르간의 하강음계에 이어 제1바이올린이 셋잇단음표와 4분음표로 이뤄진 명상적 주제를 연주하고 제2바이올린이 같은 방식으로 주제를 이어받는다. 이 부분의 셈여림말은 pp(피아니시모, 아주 여리게)다. 이런 진행은 64마디까지 12마디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65마디부터 제1, 2바이올린이 같은 주제를 연주하고 첼로와 비올라가 대응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이 부분의 셈여림말 역시 pp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53마디와 65마디의 음량이 동일해야 하는가? 

 

레비의 답은 ‘상황에 따라 음량은 유동적이다’로 정리할 수 있다. 즉, 같은 ‘아주 여리게’이지만 두 파트가 연주하는 부분과 네 파트가 연주하는 음량이 동일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레비의 연주에선 65마디 pp의 음량이 53마디의 그것보다 조금 더 컸다. 곡의 흐름에서 보자면 자연스런 선택이다. 65마디부터는 오르간이 연주에 가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연주를 비교해보면 둘째 날 연주에서 음량이 커지는 폭이 한층 뚜렷했다. 이 역시 전자 오르간과 오르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르간 소리의 무게감이 전자 오르간에 비해 묵직하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한층 풍성한 소리를 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오르간 음향은 연주의 실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레비는 악보의 지시를 엄격하게 지키는 해석으로 유명하다. 악보에 기록된 작곡가의 지시가 아니라면 자의적으로 템포에 변화를 주거나 표현을 바꾸는 법이 좀처럼 없다. 그런데 둘째 날 연주의 마지막 두 마디에서 레비는 악보에 없는 해석을 추가했다. 오르간의 울림과 함께 팀파니의 타격이 이어지는데 첫째 날 레비는 모든 박자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악보에 별도의 지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날 연주에선 팀파니의 템포를 빠르게 당겼다 마지막 네 박자는 다시 느리게 연주했다. 이런 자의적인 변화는 레비에게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부분이다.

 

레비의 해석에 왜 변화가 일어났는지 정확히 말하긴 힘들다. 두 번의 연주에서 가장 분명한 차이를 보인 요소가 오르간의 유무이기 때문에 그리 추측할 뿐이다. 이 세상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 소리라면 어떤 영감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p152).

 

▲강동석, 조영창, 드봐이용의 연주에선 함께 노래하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사진: KBS교향악단)

함께 노래하는 즐거움
생상스 교향곡 3번에 앞서 레비와 KBS교향악단은 베토벤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 협주곡을 연주했다. 협연자로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첼리스트 조영창,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Pascal Devoyon)이 무대에 올랐다.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은 실내악 편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 3중주가 협연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피아노 3중주와 협주곡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독주 악기가 너무 많아 베토벤 특유의 메시지나 고민을 느끼기는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곡을 해석할 때는 주로 함께 연주하는 즐거움 즉,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에 중점을 두는 게 보통이다.

 

3중 협주곡의 가장 유명한 연주라 할 수 있는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1969년 녹음은 이 곡을 연주할 때의 위험 요소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리히테르는 ‘회고담과 음악수첩’에서 당시의 연주를 “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가 함 팀이 되고, 오이스트라흐와 리히테르가 한 팀이 되어 벌인 전쟁”이라고 회상했다. 3명의 독주자와 지휘자가 의견을 모으지 못한다면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힘들다.

이날 연주회에서 강동석, 조영창 그리고 드봐이용이 보여준 앙상블은 앞서 언급한 위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함께 노래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연주였다. 먼저 첼로는 이 곡에서 가장 큰 비중을 맡고 있다. 베토벤이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인 안톤 크라프트(Anton Kraft)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까닭이다. 첼리스트 조영창의 연주는 베토벤의 까다로운 요구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그의 깔끔하고 정확한 보잉은 명징한 음색을 만들어 냈다. 강동석의 바이올린 역시 자신이 드러나야 할 부분과 받쳐줘야 할 부분을 뚜렷이 구분했다. 반면 피아노를 밭은 드봐이용의 매력을 느끼기엔 곡이 가진 한계가 명확했다. 베토벤이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루돌프 대공이 연주할 것을 생각하고 곡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아노 독주가 펼쳐질 때마다 그의 정갈한 음색은 나름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강동석, 조영창, 드봐이용이 들려준 앙상블엔 마치 오래된 부부의 그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깃들어 있었다. 실제로도 이 세 음악가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사이다. 이들의 연주에 깃든 배려와 하모니는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일 것이다.

 

KBS교향악단 제716회 정기연주회
3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월 31일 롯데콘서트홀
지휘: 요엘 레비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 첼리스트 조영창 /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 / 오르가니스트 신동일
연주: KBS교향악단

 

프로그램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 op. 62
베토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 협주곡 C장조 op. 56
생상스: 교향곡 3번 C단조 op. 78 “오르간”
비제: 아를르의 여인 - 모음곡 2번 중 ‘파랑돌’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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