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야기

  • 2016-12-09

[리뷰]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중립적 해석의 브루크너 'KBS교향악단 제711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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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은 ‘숲의 교향곡’으로 불리곤 한다. 작품 곳곳에 숲을 연상케 하는 요소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듯한 1악장의 개시부, 브루크너가 ‘새의 노래’라 명명한 2악장 75마디 바이올린의 제2주제, 3악장의 시작부터 울려 퍼지는 호른의 ‘사냥 주제’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요엘 레비는 이러한 숲의 교향곡을 이루는 요소들을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순음악적인 접근으로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연주를 들려줬다.
▲요엘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브루크너는 현대음악의 특징을 띠고 있었다 (사진: KBS교향악단 홈페이지)

ppp’와 ‘mf’의 충돌
1악장은 새벽 미명(未明)을 연상시키는 들릴 듯 말 듯 여린 현의 트레몰로로 시작한다. 3마디부터 등장하는 호른의 주제 역시 현과 조화를 이루며 고요하게 연주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요엘 레비는 호른 솔로를 크고 또렷하게 연주했다.

악보를 살펴보면 이 부분 현의 트레몰로는 극도로 여리게(ppp) 연주하도록 했다. 그런데 호른의 솔로에 부연된 셈여림표는 조금 세게(mf)다. 즉 레비의 연주는 악보에 기재된 셈여림을 그대로 재현한 결과다. 이를 통해 레비는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듯한 소리라든지 새벽 미명과 같은 이미지는 배제한 채 악보에 기록된 음악적 요소를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어지는 프레이즈에서도 레비의 중립적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브루크너는 직접 악보 첫 마디의 ppp 바로 옆에 “ohne Anschwellung”라고 써넣었다. 즉 ‘극도로 여리게’라고 한 처음의 지시를 소리의 ‘팽창 없이’ 그대로 이어나가란 의미다. 이후 현악파트에 대한 셈여림 기호는 43마디에 가서 ‘(mfsempre cresc’(조금 세게, 항상 점점 세게)라고 등장하는 게 전부다. 따라서 악보 지시대로라면 현악파트는 극도로 여린 음량을 42마디까지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관객이 지루하게 여기기 때문에 관악기의 연주에 따라 현악 역시 변화를 주곤 한다. 그럼에도 레비는 브루크너의 지시를 그대로 따라 일정한 음량을 유지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브루크너 교향곡을 향한 레비의 중립적 시각은 2악장에서도 이어졌다. 장례행렬을 연상시키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서주에 이어 첼로의 주제가 이어지는데 브루크너는 이를 노래(Lied)라고 표현했다. 첼로의 노래는 슬픔에 잠긴 장례행렬을 방해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레비의 해석에 장례행렬의 이미지는 배제됐다. 여기서도 레비는 기록된 악상기호를 그대로 재현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서주는 여리게 흐르지만 첼로의 노래는 조금 세게 등장했다.

▲브루크너는 소리의 팽창 없이(ohne Anschwellung) 극도록 여린 연주를 유지하도록 했다

낭만주의보다 현대음악에 가까운 브루크너
1, 2악장에서 드러난 해석의 방향을 고려한다면 3악장에 등장하는 호른의 팡파르를 사냥의 주제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차분하며 명상적인 분위기로 진행된 1, 2악장을 뒤로하고 분위기를 반전시켜 웅장한 피날레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적인 측면이 레비에겐 훨씬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레비는 이전에 비해 훨씬 빠른 템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곡의 연주에서 관례적으로 활용돼 온 이미지를 배제한다면 과연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완성시키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레비는 선택은 음향과 리듬이었다. 고전이나 낭만주의음악보단 현대음악에 가까운 방법론이다. 

특히 4악장은 현대음악의 요소를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다. 도입부의 경우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반복되는 4분 음표,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이어지는 트레몰로 그리고 제2바이올린의 반복되는 음형은 ‘동일리듬과 음형의 반복’이란 현대음악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현악파트 뿐만 아니다. 관악기 역시 명상적인 음형을 반복하며 소리를 쌓아 나간다. 이러한 특성은 악장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레비가 이전 악장에서 숲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를 배제하고 다소 무표정하게 해석한 것은 4악장을 현대음악의 방법론으로 연주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해석은 현대음악의 거장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가 1996년 빈 필과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해석과 지향점을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의 이날의 연주는 감성적으로 다소 건조한 연주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레비의 중립적인 시각은 생각의 여지를 남김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전통적 브루크너 상에서 벗어나 브루크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피아니스트 아담 랄룸의 터치는 셈세했다 (사진: 아담 랄룸 페이스북)

미려한 선율을 아우르는 피아노의 섬세한 터치 
브루크너 교향곡 4번에 앞서 연주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에서 레비는 피아니스트 아담 랄룸(Adam Laloum)과 호흡을 맞췄다. 랄룸은 섬세한 터치를 앞세워 모차르트의 미려한 선율미를 부드럽게 아우르는 연주를 들려줬다.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오케스트라의 서주가 긴 편에 속한다. 피아노는 76마디에 가서야 등장한다. 긴 서주가 마치고 피아노가 등장할 차례가 되자 랄룸은 대단히 여린 터치로 연주를 시작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화려하게 등장해도 될 법한데 랄룸은 그러지 않았다. 실제로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화려한 등장으로 주목을 끄는 게 사실이다.

악보를 살펴보면 랄룸의 연주가 상당한 고심의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피아노가 처음 등장하는 76마디엔 사실 어떠한 악상기호도 없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피아니스트의 마음인 듯 보인다. 그런데 두 마디 전인 74마디 플루트 솔로에서 해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이 부분을 여리게(p) 연주하도록 했다. 악기간의 호흡을 중요시하는 모차르트라면 여린 플루트의 솔로에 이어 등장하는 피아노 역시 여리게 연주하도록 했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랄룸은 피아노만 돋보이기보단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는 연주를 지향했다. 레비 역시 마찬가지다. 화려한 연주보다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이러한 특징은 연주 전체를 통해 드러났다. 2악장에선 영화에 등장한 유명한 선율이라고 해서 전면에 내세우는 법이 없으며, 피날레라고 해서 함부로 흥분하지도 않았다.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앙상블을 바탕으로 모차르트의 미려한 선율이 돋보이는 연주였다. 하지만 동시에 다소 밋밋한 연주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최근의 트렌드처럼 현악기의 수를 조금 줄이고 다이내믹을 강조해서 연주했다면 훨씬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옷이 있기 마련이다. 맞지 않는 옷이라면 입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KBS교향악단 제711회 정기연주회
10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요엘 레비
협연: 아담 랄룸
연주: KBS교향악단


프로그램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V 467
브루크너: 교향곡 4번 E flat장조 “낭만적” (1880, Ed.: L. No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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