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뉴스 권고든의 곧은 클래식]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흔히 ‘원시주의 음악’(Primitivism music)으로 분류된다. 서양음악사에 관련된 책을 보면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은 원시주의 음악의 대표격으로 소개되곤 한다.
원시중의 음악이란 ‘원시민족의 소박하고 야성적인 음악을 소재로 한 현대 음악의 한 흐름’으로 선율과 화성보다는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리듬에 무게 두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일까 봄의 제전을 연주하는 대다수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폭발적인 다이내믹과 자극적인 음향을 만들어내기에 바쁘다.
그런데 요엘 레비와 KBS교향악단은 지난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709회 정기연주회에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풀어냈다.
▲제709회 정기연주회 리허설 스케치. 사진출처 : KBS교향악단 페이스북 영상 캡쳐
|
봄의 제전은 현대 음악의 시류
독일의 미학자 아도르노(Adorno, Theodor)는 자신의 책 ‘신 음악철학’에서 봄의 제전을 가리켜 “주체의 죽음을 멀리서 만족스러운 태도로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아도르노는 봄의 제전을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일탈’로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오히려 현대음악의 시류로서 바라본다.
요엘 레비 역시 이 곡을 현대음악의 시류로 바라봤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을 구체화하는 수단으로 전음렬주의 사조의 방법론을 대입했다. 리듬과 음가, 음고, 다이내믹 등 연주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자신이 설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했다. 그 결과 과도한 몰입이나 열광은 배제된 채 냉정한 시각과 철저한 계산만이 남았다.
그렇다고 이 연주에 뜨거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계산된 연주가 현실에서 완성돼 가는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묘한 흥분감을 일으켰다.
평자는 개르기예프, 에사 페카 살로넨, 리카르도 무티 등 폭발적인 연주만이 이곡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960년 스트라빈스키는 직접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이곡의 연주를 음반으로 남겼다. 거기에 자극적인 리듬이나 터질 듯한 음향의 홍수는 없었다. 철저한 계산과 냉철함이 있을 뿐이다.
요엘 레비는 과도한 음향의 스케일 안에 숨어있는 봄의 제전의 본질을 무대 위에서 까발렸다. 어쩌면 취향에 따라 다소 심심한 연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스트라빈스키가 생각한 봄의 제전일 것이다. 제물로 바쳐지는 처녀를 멀리서 그저 바라보는 시각 말이다.
▲사진제공 : KBS교향악단
|
현대음악과 대비를 이루는 고전음악
봄의 제전에 앞서 레비와 KBS교향악단은 고전음악을 연주함으로 음악사조의 뚜렷한 대비를 선사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레오노레 서곡 2번이다.
협연자로는 영국 출신의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벤자민 그로스베너(Benjamin Grosvenor)가 무대에 올랐다. 그로스베너의 터치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또한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단순하게 풀어내는 능력을 지녔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해석상에 남점을 지니고 있다. 여전히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특성이 진하게 배어있지만 그렇다고 베토벤의 체취가 흐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곡이다. 그래서 해석의 포인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로스베너는 이런 부분을 명쾌하게 넘어갔다. 고전주의 음악으로 해석의 기조를 잡아 다소 속도감 있는 템포에 정갈한 터치로 연주했다. 다소 모차르트와 같은 인상이 강한 연주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는 상당하다.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호흡도 수준급인데 이것 역시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전의 젊은 베토벤의 모습을 그로스베너는 생기 있게 그려냈다.
앞서 연주한 레오노레 서곡 2번 역시 상당히 생기 있는 연주로 목관의 아기자기한 연주를 감싸는 호른의 따뜻하고 풍성한 울림이 인상적인 연주였다.